![]() | ||
예전에는 안 그랬던 친구들이 점점 말이 많아지고 길어지고 있다. 별 얘기가 아닌 얘기를 끝도 없이 주저리주저리 한다. 이미 여러 차례 들은 얘기를 3절까지 하는데 마치 고장 난 레코드판 같다. 상대야 듣건 말건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. 상대가 지루해 하는 걸 모르는 것일까, 알지만 그냥 하는 것일까? 근데 왜 나이가 들면 말이 많고 길어지는 것일까? 난 몸이 약해지듯 뇌가 약해지는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.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. 지금 나설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. 고도의 관찰력과 눈치가 필요한데 나이가 들면 이게 쉽지 않다. 나서지 않아야 할 상황에 나서는 일이 다반사다. 할 말을 하는 것도 그렇다. 왜 용건만 간단히 얘기하지 못할까? 왜 같은 얘기를 중언부언하는 것일까?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압축 능력이 있어야 한다. 핵심만 빼고 나머지는 버리고 핵심을 압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.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곧잘 한다. 왜 봉창을 두드릴까? 상대 얘기를 열심히 듣지 않았거나, 들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. 맥락을 잘 읽어야 거기에 맞는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 아무 말이나 막 하면서 대화의 흐름을 깨는 것이다. 이 역시 뇌세포가 싱싱해야 가능하다. 난 대화하는 걸 보면서 그 사람을 판단한다. 제대로 대화를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. 대화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혼자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는 사람이다. 말이 많다는 건 단순히 말이 많은 것 이상을 의미한다. 왜 말이 많은 게 위험할까? 첫째, 말이 많은 그 자체를 사람들은 싫어한다. 험담 중 가장 많은 게 바로 ‘말이 많다. 많아도 너무 많다’는 것이다. 뭐든 길면 좋지 않다. 강연이나 설교도 긴 건 질색이다. 시간을 넘겨가며 침을 튀기며 얘기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경멸한다. “설교가 20분을 넘어서면 어떤 죄인도 구원할 수 없다.”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. 둘째, 말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. 뭐든 처음에는 신선하고 들을만 하지만 말이 길어지면 사람들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. 1절만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걸 3절까지 하면 그 자체로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법이다. 좋은 얘기도 반복하면 싫어하는데 하물며 싫은 얘기를 3절까지 한다고 생각해 보라. 당신은 기피 인물이 될 것이다. 셋째,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곤란한 일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. 100번 옳은 얘기 중에 단 한 번의 실수로 꼬투리를 잡혀 곤욕을 치를 수 있음에 관련한 사자성어가 “다언삭궁 불여수중 (多言數窮 不如守中)”이다. 말이 많으면 곤란한 일을 자주 당하니 밖으로 내뱉는 것보다는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게 낫다는 말이다. 잠언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. “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,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니라.” 넷째, 정말 중요한 것은 길지 않다. 핵심 아이디어와 전략은 길 필요가 없다.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. 말이 길다는 건 그만큼 자기 말에 핵심이 없다는 반증이다. 지루한 얘기를 길게 하는 건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당신이 어리석다는 걸 증명한다. 다섯째, 쓸데없는 소리를 할 바에는 가만히 입을 닫는 것이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좋다. 현자는 말해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말하고, 바보는 뭐든 말해야 하기 때문에 말한다. “너무 긁으면 피부가 상하고, 너무 지껄이면 마음이 상한다.” 러시아 속담이다.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? 디폴트는 침묵이다. 반드시 해야 할 때를 제외하곤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. 당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.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입을 여는 순간 깨는 그런 존재가 되면 곤란하다. 마이크가 당신에게 온다면 가능한 짧지만 인사이트가 있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.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. *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@hans-consulting.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. | ||